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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동반 여행

순교자들과 춤을

지금 사는 집 근처에 성당이 있다. 가끔 사람들이 모여 떠드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리고 특히 일요일 오전이면 미사가 끝나고 성당 마당으로 몰려나온 사람들이 한 주의 회포를 왁자지껄하게 푼다.

어느 날씨 좋던 날 일요일 오전, 성당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조용하니 좋기도 하고 허전하기도 했지만, 또 괜히 걱정도 됐다. 무슨 일이 있나? 오후에 집을 나와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세상에, 일요일 오후의 성당이 텅 비어 있었다. 이렇게 개미 새끼 한 마리 없는 모습은 처음 보는 듯했다. 아마 단체 여행을 떠난 게 아닐까 싶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비워 놓아도 되는 걸까?

나중에 그 성당에 다니는 동네 분을 만나 물어보았다. 일요일 새벽부터 모두 함께 기차를 타고 성지순례를 떠났다고 했다. “어쩜, 한 분도 안 남기고 다 가신 거예요?” “그럼요! 다 같이 가는데 누구는 빠지면 안 되죠.”

나도 어릴 때는 엄마아빠를 따라 성당엘 다녔다. 취학 전에는 특히나 거의 모든 사교와 공부와 놀이가 그 종교 공동체 내에서 이루어졌다.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봄가을 날이 좋을 때면 성당에서는 꼭 한번씩 다함께 소풍 혹은 야유회를 떠났다. 하지만 정식 명칭은 ‘성지순례’였다. 

19세기인가 한반도에 들어온 천주교는 박해를 받았고 수많은 순교자들이 생겼다. 그들을 기리는 (혹은 그들이 학살당했던) 장소들이 여러 지역에 있었다. 절두산, 새남터, 해미... 지금은 잘 생각이 안 나는데, 아마도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엔 결국 전국의 천주교 성지를 한 군데도 빼놓지 않고 갔던 것 같다.

그때의 사진들을 지금도 몇 장 보관하고 있다. 몇 백명이 모여 찍은 단체 사진도 있고, 나머지 사진은 대체로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먹거나 어린이들이 모여 춤을 추는 장면들이다.

그랬다. 성지순례를 가면 반드시 어린이들을 한데 모아 놓고 춤을 추는 시간이 있었다. 점심 도시락을 먹고 잠시 쉬다가 어른들이 가지고 간 스피커를 키 큰 나무들 두어 그루에 걸쳐 놓고 팝음악을 틀었다. 그리고 “애들은 다 나와라!”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독려를 했다. 그러면 처음에는 쭈뼛거리던 아이들이 하나 둘 나와서 어색하게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점점 신이 나서 아이들은 머리칼이 땀에 흠뻑 젖을 때까지 춤을 추었다. 




그래서 순교 성지는 전혀 으스스한 장소가 아니었고 성지 순례는 전혀 엄숙한 여행이 아니었다. 어찌 생각하면 19세기에 수백수천 명의 순교자들이 자신의 믿음을 지키려다가 잔인하게 죽어간 덕분에, 마을 공동체가 무너져가던 20세기 후반의 한국 어린이들은 대신, 종교 공동체에 속해 자라날 수 있었다. 단체 여행도 떠나고 단체로 춤을 추며 에너지를 발산시킬 수 있었다. 그런 날 밤이면 아이들도 어른들도 꿀잠을 잤을 테고 다음 한 주도 평화로이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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