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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여행 모험

팔도의 친구 찾기, 포항 2



꼭두새벽부터 시작된 하루는 꽤 길었다. 포항 친구네 집에서 아침을 먹은 다음, 친구와 나는 포항 시내 구경을 나섰다. 지방 도시 구경이 뭐 있었겠냐만, 산책처럼 여기저기 슬렁슬렁 걸어다니기로 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매일 저녁 술을 마시고 자정이 넘어 집에 들어갔다가 오전 수업을 제끼고 오후가 돼야 기어나오는 생활을 반복하던 두 여자애가 동이 튼 지 얼마 안 된 아침에 집을 나서니 어색한 웃음도 나왔다. 

나도 그런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포항의 부모님 댁에서 나와서 서울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친구는 더욱 그랬다. 학교에서 그녀는 술고래 신입생으로 통했으며, 그녀의 아버지가 목사라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가 대학생이었기에 그랬는지, 포항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이곳의 대학교에 가보자는 말이 나왔다. 여기엔 그 유명한 포항공대가 있었다. 자세한 설립 배경이나 위상은 몰랐지만, 특이하고 우수한 아이들이 모여 뭔가 대단한 공부를 하고 있을 것 같은 곳이었다.

그래서 가본 포항공대 캠퍼스는 건물부터 실내 집기까지 모든 것이 새롭고 깨끗했다. 낡고 지저분한 우리 학교 인문대와는 딴판이었다. 사실 좀 사람 냄새가 안 나는 삭막한 느낌도 있었다. 겨울방학이었기 때문에 학생도 거의 보이지 않고 텅 빈 건물들에는 그 흔한 대자보 한 장 붙어 있지 않았다. 

우리는 사람의 흔적을 찾아 넓은 캠퍼스를 헤매다니다가, 동아리방들이 모여 있는 학생회관 같은 건물에 들어가게 됐다. 거기 한 층에 포항공대생들이 사용하는 모든 물건이 집약적으로 모여 있는 것 같았다. 그다지 넓지 않은 건물의 한 개 층에 빼곡하게 파티션을 설치하고, 그 오밀조밀한 격자형 공간 하나하나에 온갖 동아리들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산악부, 현악부, 만화부,,, 등등 대학생다운 취미 활동의 흔적이 두 평도 안 돼 보이는 좁은 칸막이들 안에 꽉꽉 들어차 있었다. 

나랑 친구는 마치 아라비아 산적의 보물창고에 들어간 알리바바처럼 각 파티션 안에 모인 흥미롭고, 꽤 값도 나가 보이는 물건들을 구경하다가 나왔다. 역시나 학생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지만, 동아리방들이 모인 층은 잠금 장치도 돼 있지 않았다. 서울의 우리 학교 동아리방들은 허름하고 작으나마 모두 별도의 방에 배정돼 있었고 비울 때는 꼭 문을 잠근 다음, 모두가 아는 구석진 장소에 열쇠를 숨겨 놓기로 돼 있었는데 말이다. (*같이 글쓰기 모임을 하는 포항 출신 분의 말로는, 그때 그 근방이 부촌이었고 외부인들은 거의 오지 않던 동네였다고 설명해 주었다.)

1학년 때 같은 모임을 열심히 나가며 친해진 포항친구와 나는, 2학년이 올라가 그녀가 모임을 그만두면서 따로 만나지는 않게 됐다. 관심사도, 같이 어울리는 친구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린 가끔 마주치면 옛날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참 지나서, 포항 친구를 동창회 비슷한 모임에서 딱 한 번 다시 만난 적이 있다. 그녀는 남편을 데리고 나와서 환상의 2중창을 선보였고 둘은 마치 한쌍의 다람쥐처럼 귀여웠다. 그녀는 30이 넘은 나이에 새삼 교정기를 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서른살 생일 선물로 해준 거라고 자랑했다. 교정기를 끼니 더 귀여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