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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여행 모험

구비 문학 채록 여행과 폭력 1


대학 신입생 때, 고전문학학회에 들어갔을 때는 그런 여행도 있는 줄 몰랐다. 이왕 국문과 대학에 들어왔으니, 현대문학만 공부하지 말고 고전문학도 좀 공부해보면 어떨까 싶어서 들어간 학회였다. 외국어에서 느끼게 되는 호기심과 비슷했다. 아무리 우리의 것이라지만, 낯섦에 대한 매력으로 고려가요니, 향가니 하는 것들과 한문학에 접근했던 거다.

어차피 정식 수업은 아니었다. 난생처럼 나의 또래들끼리 세미나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 모여서는, 같이 문헌을 찾아보고 멋대로 해석도 해보고 이론적인 난상 토론을 벌이는 게 재미있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 시시하고 따분한 고문헌의 실체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또래들과의 모임도 시들해졌을 무렵, 겨울 방학 때 ‘구비문학 채록 여행’을 간다고 했다. 

고전문학 중에서도 구비전승을 전공하는 대학원생들과 학부생이 함께 매년 지역을 다르게 정해 시골 마을을 찾아다니는 거였다. 꽤 재미있게 들렸다. 동네마다 조금씩 다르게 전해 내려오는 옛날 이야기 같은 것들을 수집한다니, 명분이 있는 여행일 뿐 아니라, 꽤 야성적인 면도 있는 탐험이 될 것 같아서 신이 났다.

알고 보니 녹음기 이외에, 별다른 준비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여행이었다. 대학원생들이 지역을 정할 때는 뭔가 참고 자료가 있었겠지만, 해당 지역까지 시외버스를 타고 가서 내린 다음에는, 그냥 지도에서 마을 하나를 찍고 시골버스를 타고 무작정 쳐들어 가는 거였다. 

어느 경상도 지역의 다섯 군데 마을을 열흘간 도는 일정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동네 입구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부터 붙잡고 ‘이장님’을 뵐 수 있냐고 묻는다. 겨울이라 대체로 댁에 계시거나 이웃으로 마실 간 이장님을 만나게 되면, 대학생들이 ‘옛날 이야기’를 들으러 왔다고, 옛날 이야기 제일 많이 알고 계신 분이 누구냐고 묻는다. 그럼 이장님은 대체로 확성기를 동원해 서울에서 대학생들이 이야기를 들으러 왔으니 마을회관으로 다들 모이라고 한다. 그러면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떡과 막걸리를 들고…

한 번 마을 잔치의 난리통을 겪고 났더니 안 되겠다 싶었던 우리 답사팀은 다음 마을에선 이장님께, 사람들을 모으지 말고 그냥 몇 분께 소개만 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몹시 허름한 읍내 여인숙에 주로 묵었던 우리 채록팀은 어차피 늦잠을 잤고, 오전 시간은 버스 이동으로 허비한 후, 추운 겨울 오후가 되어서야 이장님의 안내를 받아 이 집 저 집을 방문하고 다녔다. 댁에 안 계시는 분, 계시지만 이야기는 못한다고 거절하는 분,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해서 감사히 들어가 먹을 것까지 한참 대접을 받았는데 막상 이야기가 생각 안 난다며 고뇌하는 분, 이야기를 시작을 했는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분, 발음도 부정확하고 사투리도 심해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는 분…

우리 채록팀에는 성과보다 좌절이 쌓여갔다. 낯선 노인들을 만나고 상대하는 일도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지만 아무 재미도 보람도 없이 추운 시골길을 밤늦게까지 헤매다니는 건, 생각보다 꽤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었나 보다. 피로도 쌓여 갔다. 이야기를 풀어놓는 할머님, 할아버님들 앞에 녹음기를 켜놓고 우리는 꾸벅꾸벅 조는 일이 잦아졌다. 

열흘간의 구비 문학 채록 여행이 (내가 판단하기에) 거의 실패로 끝날 무렵, 마지막날 밤인가, 우리 팀은 여인숙 방에 모여 술을 마셨다. 지금까지 녹음된 수십시간의 테이프들 가운데, 녹취를 할 가치가 있는 테이프는, 내가 보기에 단 한 개도 없었다. 나는 그게 아무래도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회장 탓인 것만 같았다. 반쯤 놀자고 온 여행이긴 했지만, 일주일 넘게 무의미하게 허비한 것 같아서 화가 났다.

그렇게 술이 좀 취해 가던 나는 갑자기 회장을 향해 발차기를 날려 버렸다. 다들 벽에 기대 비스듬히 눕다시피 앉아 있는 상태에서, 내가 경련을 하듯 발을 뻗어 2학년 선배인 남자 회장의 옆구리 쪽을 퍽 친 것이다.

 

(다음 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