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조직을 계획할 때, 어떤 기준에 의해서 사람을 분류하고 나누는지 목격하는 일은 당황스럽다. 남이 분류되는 광경을 바라보는 일은 민망하고, 내가 분류되는 체험은 몹시 당황스러울 것이다. (인간에겐 '자아상'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게 침해되면 큰 심적 충격을 받는단다)
대학교 2학년 때, 나를 분류한 선배들이 있었다. 내 짐작으로는 ‘열등반’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내가 1학년 때부터 운동권 사상을 공부하지 않아서 그럴 거였다. 다들 1학년 때부터 학습 모임을 해왔는데, 나는 뒤늦게서야 공부를 하고 싶다고 '컨택'을 했다
미국에서 잠깐 살다가 정원외로 들어왔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을 고백하듯 되풀이 실토하던 선배가 나를 받아주었다. 그러니까 그 선배도 약간의 열등반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운동권에 몸담고 있다가 대학교에 들어온 애들이 우등생으로 분류가 되는 상황인데, 미제국주의 교육을 받다가 뒤늦게… 아무튼 교포 선배는 약간 무시당하는 캐릭터였다. 그렇다고 따돌림은 아니고 다들 영어 발음 해보라고 놀리며 재미있어 하는 캐릭터였다.
그렇게 우리 열등반 선배 둘과 후배 넷의 공부 모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공부 모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충주로 합숙 여행을 가게 되었다. 후배 넷 중 하나가 충주 출신이었는데, 심지어 부모님에게 호숫가 별장이 있다고 했다. 난생 처음 가본 충주였고 난생 처음 가본, 친구 부모님 별장이었다.
아침 먹고 책을 읽고 점심 먹고 메모와 정리를 했다. 저녁을 먹고 난 다음에는 토론을 했다. 그렇게 3박 4일을 보냈다. 그렇게 의미 있는 여행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책 한 권은 확실히 다 읽을 수 있었다. 아침이면 물안개가 신비롭게 피어오르는 호숫가 별장에서, 아이러니 하지만, 이보다 더 생산적인 일을 하기도 힘들겠다는 체념은 들었다.
사실 요즘에 나는 그런 합숙 여행을 가고 싶어졌다. 글 쓰는 동료들이랑 일정을 맞춰, 제주도 같은 곳의 독채 펜션을 빌린 다음 한 달 정도 집중적으로 책을 읽고 토론하고 글을 쓰고 서로 조언을 구하는 여행을 꿈꾸게 된다. 그런 여행을 갈 때도 선별을 필수일까? 하지만 선별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 모으기 자체가 난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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