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청년의 여행 모험

부산 결혼식과 미술인들


다른 학교 학생들과 오래 스터디를 했다. 다른 학교 학생들이 하는 스터디에 나 혼자 껴들어간 거였다. 1년 넘게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났고 만난 날은 스터디뿐 아니라 술도 함께 마셨으니까 꽤 친해졌다.

사실 내가 들어가고 싶던 학교였다. 하지만 학자금이 모자랐다. 그래서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다른 학교에 입학을 해야 했다. 그 대신 원래 가고 싶던 그 학교의 학생들에게 연락해서 스터디 꼽사리를 끼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거기 학생들은 나를 아무 텃세도 없이 받아주었다. 친근하게 대해 주었다.

스터디가 끝나고 나서도 그때 애들은 나를 술자리 등에 자주 불러주었다. 그중 두셋과는 아주 친해져서, 그들과 자주 어울리다보면 다른 아이들과도 종종 마주쳐서 계속 안면을 이어가게 됐다. 그렇게 관계들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스터디 멤버 중 한 애가 결혼을 한다고 했다. 결혼식장은 부산이었다. 나랑 그다지 친한 애는 아니라서 직접 연락을 받지는 못했지만, 친한 멤버들이 같이 가자고 했다. 아예 1박 2일 여행을 하자는 거였다. 부산 출신 멤버도 합류해서 재밌게 놀 거라고 했다.

난 부산은 겨우 한 번밖에 못 가보았고 그마저도 시내버스만 한 번 휙 타고 왔으니,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여행이 될 것 같았다. 기차를 타고 부산역에 내렸다. 이번 결혼식을 위해 정장까지 새로 샀다. 아직 결혼식 갈 일이 많이 없었어서 입고 갈 옷이 마땅치 않았던 거다. 기차표에 숙박료에 정장 구입비까지, 돈이 좀 깨졌지만, 새 정장은 무난한 스타일에 칙칙한 색이라 결혼식 장례식 등에 다 무난하게 어울릴 것이었다.

결혼식이 끝난 후 다같이 신부에게 인사를 했다. 나랑 1년 동안 스터디를 같이 했지만 그다지 친하지는 않았던 신부는 나를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옆의 가방에서 봉투들을 꺼내 같이 간 다른 스터디 멤버에게 주면서 말했다. “나 차비를 너희들 것밖에 준비 못해서 미안해. ‘~씨’가 올 줄 몰랐지 뭐야. 정말 미안하다.”

순간 나는 멍해지면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하긴, 그냥 이름으로 불리는 다른 스터디 멤버들과 달리, 나는 그녀에게 ‘~씨’로 불리고 있었다. 물론 나랑 친한 멤버들은 그냥 내 이름만 불렀지만 말이다.

다른 멤버들의 얼굴에도 약간 낭패한 표정이 스쳤다. 그러고서 다른 결혼식 하객이 신부에게 인사를 하는데, 낯이 익었다. 내가 다닌 학교의 학생이었다. 더구나 내가 한 동안 짝사랑했던, 먼 선배였다. 정신없는 상황이라 나를 못 알아보는 모양이었다. 나는 황급히 몸을 돌렸다. 신부랑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신기했지만 물어볼 생각은 없었다.

같이 간 친구들과 예식장을 나와서 자갈치 시장으로 갔다. 꼼장어 골목에서 저녁을 먹었다. 겨울이지만 주로 노천 자리로 이뤄진 포장 마차 행렬 틈새에 끼어 앉아 왁자하게 소주를 마시며 연기를 피워 올렸다. 평소 안 입던 정장이 몹시 불편하게 느껴졌지만 점점 취해 가면서 괜찮아졌다.



우리가 먹던 가게에는 ‘서울집’이라는 상호가 붙어 있었고 유난히 손님이 많았다. 부산 출신인 멤버가 데려온 곳이라 좀 의아했는데, 그는 여기가 제일 잘해서 데려왔다고 말했다. 잠시 후 옆가게에서 장사가 잘 안 되는지 주인이 와서 작은 행패를 부렸다. 자기네 가게를 침범하지 말라고 말이다. 그러자 서울집 주인은 텃세에 조금도 지지 않고 큰소리치며 대항했다.

다음날은 부산비엔날레 전시를 보러갔다. 건물도, 작품들도, 생각보다 너무 괜찮아서 감탄을 하며 봤다. 이들과 같이 하던 스터디는 사실, 미술사 스터디였다. 그들은 졸업하고 대부분 미술계에서 직장을 잡았다. 하지만 부산 출신이었던 멤버는 환경 단체에 들어갔다. 그리고 시간이 꽤 흐른 후 어떻게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내가 최근에 디자인 프로그램을 배웠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네 환경단체의 반팔티 디자인을 해달라고 했다. 바다 생물들이 다양하게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며칠 밤을 새우며 도안을 그려서 보냈다. 그는 받고 나서, 내 디자인이 너무 귀엽고 예쁘지만 뭔가 단체 성격이랑 잘 안 맞아서 쓸 수 없게 되어 미안하다고 했다. 아마 그게 내가 그들이랑 연락한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또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새로 이사간 동네 카페에서 멤버 하나의 뒷모습을 보게 되었다. 단골인 듯, 카페 주인과 친근하게 얘기하고 있었다. 난 아마도 다신 그 카페에 안 갔던 것 같다.


'청년의 여행 모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 번의 강화도 여행  (6) 2024.10.22
광주 비엔날레와 수영장 사고  (0) 2024.07.24
전주 영화제의 유령  (0) 2022.06.08
충주의 합숙 여행  (0) 2022.04.25
다섯 살 어린, 술취한 사람들과의 여행  (0) 2022.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