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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여행 모험

엠티 나와서 춘천행 기차 타기

처음 춘천에 간 건 대학에 들어가서 한창 엠티를 다니던 1학년 봄이었다. 밤을 새며 술을 마시다가 동이 트기 시작했을 때, 혜진이가 고등학교 때 친구를 만나러 춘천에 간다고 주섬주섬 일어났다. 나는 꽤 헤롱거리고 있었지만 웬일인지 벌떡 따라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도 가겠다고 졸랐다. 술자리는 파장이 된 것 같은데, 이제야 잠자러 가기도 싫고 그렇다고 집에 가기도 싫은, 애매한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요즘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새학년이 시작되면 대학에서 이런 저런 엠티를 많이도 갔다. 신입생 엠티, 전체 엠티, 학번 엠티, 학회 엠티, 동아리 엠티... 엄마한테 이번 주 금요일에 엠티를 간다고 말하면 무슨 엠티를 매주 가?” 하는 고함이 돌아오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학번 엠티라서 처음으로 동기들끼리만 여행을 가게 된, 꽤 신나는 행사였지만 양상은 다른 엠티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청량리 기차역에 모여 장을 보고, 일영인지 강촌인지 하여간 당시 엠티촌이라고 불리던 서울 교외의 유원지에 도착했다. 커다란 가건물 같은 지저분한 숙소에 들어가 대충 밥을 지어먹었다. 그러고 나면 밤새도록 술판을 벌였다. 게임하고 토하고 울고 웃고 싸우고아침이 되면 몇몇 지각 있는 친구들이 뒷일을 수습하고 나머지를 깨워서 서울로 돌아왔다.

이 얘기를 젊은 친구에게 했더니 즉각 인터넷에서 검색해 당시 사진들을 휙휙 넘기면서 촌스런 우리의 행색과 허름한 풍경을 마구 비웃었다.

그때 혜진이와 나는 엠티촌의 토사물 묻은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거나 청소를 하고 아침을 준비하는 대신, 차가운 봄의 새벽 공기 속으로 나왔다. 간단히 세수를 해서 술을 깬 다음 시골길을 걸어 춘천행 아침 기차를 탔다. 안개가 많이 끼었던 기차역과 강물의 풍경이 기억난다. 낭만적인 유행가 가사도 떠오를 법한 상황이지만, 술에 만취하고 또 동성의 친구 사이였던 혜진이와 나는 기차에 탄 후에는 정신없이 졸기만 했다. 이리저리 꺾이는 목을 가누며, 차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땀도 흘렸던 것 같다.

그래도 용케 춘천에 잘 내려, 혜진이의 친구를 찾아 어느 대학교 기숙사로 갔다. 그녀의 이름은 민경이라고 했다. 민경이를 따라서 대학교와 기숙사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러고 나서 점심을 먹으러 중심가로 나가기로 했다. 민경이는 자기 대학 동기도 몇 명 불렀다. 우리는 그 유명한 춘천 닭갈비를 먹으러 갔는데, 생물학과였던 그들은 내장 많이 주세요를 외친 다음, 밥을 먹으며 각 내장의 생김새와 기능에 대해 열심히 가르쳐 주었다.

그러고 나서 춘천 시내를 하릴없이 유람하며 그곳 대학생들의 단골이라는 찻집과 술집을 차례로 전전했다. 시내에서 민경이와 동기들은 계속 아는 사람들과 마주쳤고, 우리는 끊임없이 또래 젊은이들과 합석했다가 떠나보냈다가 하면서 저녁까지 춘천에 머물렀다.

민경이는 남다른 독특한 세계관 때문에 늘 대화 상대와 논쟁을 벌이면서도 굉장히 사교적인 성향을 가진 아이였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혜진이에게 듣기로, 독일로 유학을 나갔다가 한의사가 되었다고 했다. 독일에서 한의사로 일하는 게 가능할까? 혹시 불법 의료 행위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어차피 인류에게는 약초를 채집하고 달이는 신비한 여성들에 건강을 의존해온 역사도 오랜 기간 존재해왔으니, 경이 정도라면 어떻게든 길을 찾아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