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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동반 여행

청소년 수련회 혹은 여름 캠프

미국 영화를 보다 보면 summer camp 이야기가 가끔 나온다. 특히 10대를 주인공으로 한 청소년 영화의 경우 한 달까지도 이어지는 여름 캠프는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다. 여름 방학 동안 부모와 학교의 보호를 떠나 (자격이 좀 의심스런) 낯선 어른의 휘하에 들어가서 낯선 아이들과 함께 장기간을 숲속 같은 자연에서 보내는 험난한 시간이다. 아마 그 시간 동안 부모는 아이 없는 휴가를 즐기겠지..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관습은 있어 왔다. 미국처럼 상업화, 제도화되지는 않았지만, 주로 종교 단체들에서 단기간의 청소년 수련회를 개최하고 학교에서도 수학여행 이외에 몇 가지 명목의 수련회를 마련할 때가 있다.

나도 어린 시절 사진첩을 들춰보면, 수많은 소풍과 수학여행과 수련회의 사진들이 가득하다. 낮에 관광지나 유적지를 가고, 밤에 디스코 무대를 만들고, 잠자리에서 친구들 얼굴에 낙서를 한 추억들. 사실 사진이 아니면 어느 것 하나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별 의미 없는 경험들이었다.

그래도 위와 같은 수학여행과는 달리, ‘수련회의 추억은 비교적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다. 성당에서 갔던 수련회 때는 촛불을 켜놓고 신파적 내레이션(“부모님의 사랑에 보답을 한 적이 있나요?”)을 들으며 통곡을 했던 반성의 시간, 그리고 학교에서 갔던 간부 수련회 때는 팀워크를 다져준다며 받은, 이해할 수 없는 기합의 시간, 오랜 시간이 지난 중년의 내 몸에도 오롯이 새겨져 있는 기분이 든다.

미국 영화나 소설의 여름캠프 이야기에서도 중심으로 등장하는 것은 고생담이다. 버림받은 것과도 유사한 환경에 던져져 어린 나이에 그때까지 습득한 허술한 생존의 기술을 실전 적용해야 했던 막막함과 공포. 그건 결국 '독립심'을 기르는 과정이었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수련회 관습은 좀 다른 종류의 시련을 통해 청소년들을 교육시켜왔다. 보다 심화된 종류의 훈육을 통해 체제의 무서움과 권위를 느끼게 만드는 시간. 즉 그건 '순응'을 기르는 과정이었다. 물론 순응이 독립보다 나쁜 건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둘 다 사회에 적응하는 한 방법일 수 있으니까.

요즘 청소년들은 부모와 해외여행을 곧잘 가는 대신 수련회 같은 건 잘 안 가는 것 같다. 아마 가더라도, 요즘 같은 분위기에 반성의 시간이나 기합의 시간같은 프로그램은 생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도 미국식 여름 캠프가 도입되는 것 같지도 않다. 세월호 참사나 해병대 캠프 참사 같은 것들이 벌어진 이후에는 더욱.

그렇다면 청소년기에 부모와의 여름 해외여행에선 뭘 경험할 수 있을까? 주로 서유럽 영화에서 본 장면은 다음과 같았다. 부모들이 해변에서 늘어져 있는 사이 지루함을 못 이긴 청소년들은 주로 성과 관계된 '일탈'을 했다. 일탈도 훌륭한 성숙의 계기가 된다. 최근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도 멋졌고 말이다.